[주간조선-파워인터뷰] KAIST 서남표 총장의 1000일 실험

"난, 한국 교육의 가능성을 봤다"

서남표(73) KAIST 총장을 만난 건 4월 셋째 주 토요일 오전 10시였다. 약속 시간보다 조금 일찍 인터뷰 장소인 서울 웨스틴 조선호텔 비즈니스센터에 도착했다. 서 총장은 엘리베이터 앞에서 서너 명과 대화 중이었다. 비서실 관계자는 “아침 회의가 덜 끝났으니 좀 기다려 달라”고 했다. 약속된 인터뷰 시간은 1시간30분이었다. 이후부턴 또 다른 약속이 잡혀있다고 했다. 웬만한 사람은 다 쉬는 토요일, (학교가 있는) 대전도 아닌 서울에서, 오전에만 약속을 3개나 소화해내는 그를 보니 왜 모두 서남표, 서남표 하는지 알 것 같았다.

서남표 총장은 지난 4월 9일 취임 1000일을 맞았다. 3년이 채 안 되는 기간 동안 그가 바꿔놓은 KAIST의 면면은 놀라울 정도다. 영어강의를 전면 도입했고 일단 입학하면 전액 무료였던 학비를 성적에 따라 차등 부과했다. 2007년 교수 테뉴어(tenure·정년보장 교수직) 심사에선 38명 중 15명을 탈락시켜 교수사회를 충격에 빠뜨렸다. 지난 3월엔 학교장 추천으로도 합격할 수 있고 수학·과학경시대회 성적도 반영하지 않겠다는 내용의 2010학년도 신입생 선발계획을 발표해 또 한번 뉴스의 중심에 섰다. 모두가 생각은 했지만 아무도 선뜻 나서지 못했던 일들을 과감하게 밀어붙이는 ‘서남표식 리더십’은 교육계뿐 아니라 사회 전체로도 큰 파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서 총장의 화법엔 완곡이란 게 없다. 어떤 이슈에 대해 물어도 그는 에둘러 말하는 법 없이 단호한 어조로 자신의 소신을 밝혔다. 주간조선은 그를 한 대학의 총장이 아니라 개혁에 성공한 조직의 리더로 만나 대화를 나눴다. 어지럽게 얽혀 있는 교육은 물론, 한국 사회 전체를 향한 조언을 구했다. 그가 던진 메시지들은 대학에 있지 않아도, 교육계에 종사하지 않아도 누구나 공감할 만한 내용이었다. 90분간 그가 한 이야기를 들어보자. (서 총장은 이야기 중간중간 영어 단어를 많이 사용했다. 기사에선 일단 우리말로 옮기되, 인터뷰 현장의 분위기를 가급적 그대로 전하기 위해 괄호를 사용해 병기했다.)

지난 3월 5일 발표된 2010학년도 KAIST 신입생 선발계획에 대한 사회 각계의 파장이 큽니다. “반향을 생각하고 한 일은 아닙니다. 그냥 저희 학교 입장에서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조치를 취했을 뿐인데 언론 보도 등을 통해 알려지면서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져주시는 것 같습니다.”

이번 입시안에 대한 소감을 직접 피력해온 경우도 있었나요. “메일과 편지를 몇 통 받았죠. 좋은 입시제도를 만들어줘 고맙다는 내용도 있었지만 ‘이미 사교육에 돈을 많이 써버렸는데 어떡하냐’며 하소연하는 부모님도 있었습니다.”

개혁 추진 과정엔 필연적으로 반대세력이 존재합니다. 영어강의 전면도입, 장학금 축소, 테뉴어 심사기준 강화 등 최근 몇 년간 KAIST의 변화도 처음부터 모두가 찬성한 건 아니었을 텐데요. 한 조직의 리더로서 구성원과 갈등이 생겼을 때 어떻게 대처합니까. “지금 KAIST엔 그런(제 개혁에 반대하는) 사람 없습니다. (인터뷰 자리에 배석한 비서실 관계자를 돌아보며) 없죠?”

아, 그런가요. “반대엔 두 가지 경우가 있습니다. 하나는 절 찾아오거나 저와 연락이 닿는 사람을 통해 반대의 이유를 직접 밝히는 겁니다. 그건 간단합니다. 같이 앉아 얘기하면서 설득하면 되니까요. 그런 사람들은 같이 일하기가 참 쉽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누가 무슨 얘길 하는지 알 수 없게 뒤에서만 수군거립니다. 그들과는 같이 얘기하기 어렵죠. 일반적으로 개혁에 반대하는 사람 중엔 (개혁의) 목적이 뭔지 몰라 그런 경우가 많습니다. 방법만 갖고 반대하는 거죠. 그럴 땐 일단 목적을 설명하면 설득이 쉽습니다. 제가 밤낮으로 하는 얘기지만 여기서 부산까지 가는 길은 여러 가지가 있다 이거죠. 목적이 ‘부산 가는 것’이고 그게 옳은 목적이라면 어떻게 가든 관계없단 얘깁니다. 그런 면에서 (KAIST 같은) 학교는 목적이 단순한 조직이죠.”

그래도 개혁 초창기엔 안팎에서 제법 반발이 컸던 걸로 압니다. “우리 학생들이 여러 가지로 어려웠을 겁니다. 저도 이해합니다. 예전 KAIST는 일단 들어오기만 하면 4년이고 5년이고 편안히 지내다 갈 수 있는 곳이었어요. 그런데 이젠 공부 못하면 수업료를 내야 하고 여름에도 기숙사에서 못 지내게 하죠. KAIST란 데가 어떤 면에선 외부와 꽤 연관돼 있는 것 같지만 다르게 보면 세상과 격리된(isolated) 면이 있어요. 1년 열두 달 캠퍼스에만 있으니 바깥 상황을 도통 모르는 거예요. KAIST 학생도 바깥에 나가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아야 합니다. 사람들과 부대끼며 함께 일하고 대화하면서 배우는 게 크죠. 그러면서 자기가 뭘 잘하는지 알 수도 있고요. 방학 땐 갈 데 없으면 집에라도 가 있으라고 합니다. 부모님 곁에서 석 달 있다가 학교 오면 얼마나 편안하겠느냐 이거죠. 잔소리 안 듣고 냉방 잘 되고. (웃음) 지금이야 그런 얘기 한마디도 없지만 처음 영어로 강의한다고 했을 때도 말이 많았죠. 물리 같은 과목은 한국말로 배워도 어려운데 굳이 영어로 배워야 하느냐, 그런 말도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것도 다 옛날 얘기예요. 지금은 그런 말이 쑥 들어갔습니다. 무슨 일이든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가려고 하면 항상 반동이 있는 거죠. 이제껏 해오던 생활을 바꿔야 하고 걱정 안 하던 걸 해야 하니까요. 전 당연하다고 봅니다. 그렇지만 반대의견이 있다고 해서 변화를 중단하는 건 옳지 않죠. 옳지 않다고 생각했으면 처음부터 시작하지 말았어야 하는 거고, 옳다고 믿는다면 끝까지 해야 하는 거죠.”

개혁에 반대하는 학생들 입장을 이해한단 말로 들립니다. “처음 수업료 올린다고 했을 때 20명쯤 되는 학생이 행정동 앞에 와서 시위(demonstration)를 한 적이 있습니다. 학생들 입장에선 얼마든지 그럴 수 있습니다. 할 건 해야죠. 젊은 학생들이 시위 좀 하면 어때요. 나쁠 것 없습니다. 그렇지만 그런 학생은 KAIST에서도 극소수예요. KAIST 학생 정원은 8000명에 이르는데 그중 20명이니까요.”

교수진과의 갈등은 없었나요. “교수님들도 이런저런 부담이 많았을 거예요. 테뉴어 문제부터 여간 심각한 게 아니죠. 밥줄이 달려 있으니까요. 전과목을 영어로 수업하라는 것도 쉽지가 않습니다. 입학시험 채점방식도 그렇죠. 100여명의 교수가 사흘간 인터뷰에 매달려야 하니 사흘째 오후가 되면 다들 지쳐버리곤 합니다. 그런데 반대의견은 잠깐이에요. 한번 하고 나면 다들 그게 제일 좋은 방법이라고 인정합니다. 첫해 인터뷰에 참여한 교수님이 86명이었는데 끝까지 반대한 건 단 한 분이었어요. 이듬해엔 110명이 동참했고 그런(반대하는) 말이 없었어요.”

‘개혁에 반동이 따르는 건 당연하지만 방향만 옳다면 오래가진 않는다’는 입장이군요. “오래가는 것도 있겠죠. 반대의견이 사라지지 않고, 그 사람 말 들어봐서 그게 맞다면 궤도를 수정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까진 그런 경우가 없었어요. 우리가 하려는 일이 뻔하니까요. 교육에 좋고 한국에 좋고. 그렇지 않습니까. KAIST에선 무슨 일이든 결정하기 전에 딱 한 가지만 묻습니다. 이게 KAIST를 위해 좋으냐, 나쁘냐. 좋으면 하라 이거죠. 또 하나, 모든 학교 구성원이 윤리는 꼭 지키도록 강조합니다. 학교를 위해 좋은 일을 하되 스스로에게 부끄럽진 않게. 그러면 되는 겁니다.”

‘서남표의 KAIST 개혁’을 놓고 일부에선 “국내 최고 브레인이 모여 있는 KAIST란 조직의 특수성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당연한 얘깁니다. KAIST는 한국에서도 특별한 학교입니다. 첫째 똑똑한 학생, 우수한 교수가 굉장히 많아요. 정부에서도 많이 지원(support)해주시죠. 한국 전체 사회에서도 KAIST 졸업생이라고 하면 특별히 봐줍니다. 기회도 많이 주고요. 그런 KAIST니까 개혁이 딴 데보다 훨씬 쉬웠을 거예요. 전 다른 대학에 있어보질 않아 그 쪽 사정은 잘 모르겠어요. 다만 제가 KAIST에 있어보니 KAIST가 특별한 학교인 건 사실이더군요. 좋은 사람이 많은 것도요. 그런 도움을 제가 받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KAIST의 2010학년도 입시안을 살펴보면 기본적으로 사람에 대한 신뢰가 느껴집니다. 교수 주관으로 실시하는 인성면접이 사실상 당락을 좌우하는 점도 그렇고, 교장의 추천 결과에 따라 신입생 후보를 선정하는 방식도 그렇고요. 이런 방식은 상당한 위험부담을 안고 있는데요. “그 외에 어떻게 하겠습니까. 일을 맡겨놓았으면 믿어야죠. 믿지 않으면 애당초 일을 맡기지 말아야 하고요.”

그렇긴 하지만 아직 우리 사회는 그런 부문에서 다소 미숙한 게 사실입니다. 아무리 몇 겹의 검증장치를 만든다 해도 첫해엔 잡음을 피하기가 쉽지 않을 텐데요. “저희도 신입생 선발이 너무 주관적으로 흘러가는 걸 막기 위해 점검하고 균형을 잡는(check & balance) 시스템을 집어넣었습니다. 가령 교장 추천으로 지방 고교생 1000명을 접수 받아 150명을 선발하는 전형만 해도 어느 한 사람이 결정할 수 없게 돼 있어요. 교장 선생님은 자기 학교에서 제일 우수한 학생을 추천하는 걸로 역할이 끝나죠. 그 학교를 방문해 교장 선생님과 학생, 담당 교사를 인터뷰해서 300명으로 추려내는 건 입시사정관입니다. 그들의 몫도 거기까지예요. 300명을 면접하고 150명을 최종 선발하는 건 교수님들이죠. 어느 한 사람의 입김에 따라 당락이 좌우되는 걸 막기 위한 장치인 셈입니다.”

성공할 수 있을까요. “글쎄요. 실수가 전혀 없으리라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실수가 생기면 할 수 없다 이거죠. 어느 시스템이든 항상 양 극단으로 가면 실수는 있게 마련입니다. 그건 할 수 없어요. 다만 가능한 한 실수를 제일 적게 해보자는 거예요.”

미국 이민을 떠난 고2 때 이후 사실상 한국 교육의 실상을 최근 몇 년처럼 실감한 적이 없었을 것 같습니다. “미국에 있는 동안 한국을 잊어버리고 있었던 건 아닙니다. 자주 왔다갔다 했고 미국에서도 한국 학생 많이 가르쳤으니까요. 대충 어떤 이슈가 있다는 것쯤은 알았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 오기로 결정한 후에 여러 사람들을 만나봤습니다. MIT에 와 있는 KAIST 졸업생들을 인터뷰하기도 했죠. 그러면서 자세히 생각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새로 배운 것도 있었고요.”

처음 KAIST 총장으로 맞닥뜨린 한국 교육의 현실에서 가장 실망스러웠던 부분은 무엇이었나요. “대학교수 사회란 게 대개 보통 사회에 비해 폐쇄적입니다. 한국은 더욱 그래요. 학생을 가르치는 데 치우치다 보면 사회문제와 간격이 벌어지게 되는 경우가 많죠. 그건 장점이기도 하고 단점이기도 합니다. 장점은 살리고 단점은 해결해야죠. 한국의 장래는 사람에 달려 있습니다. 한국에 부존자원이 있나요, 뭐가 있나요. 결국 남은 건 인적자원뿐이죠. 이 중요한 인적자원을 어떻게 최대한 유용하게 쓸 수 있느냐 하는 게 최대 과제입니다. 미국처럼 땅덩어리가 크고 잘사는 나라는 대학졸업 안 해도 얼마든지 잘 먹고 잘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은 그렇지 않기 때문에 교육이 중요한 거죠. 교육 때문에 한국이 여기까지 발전한 거고요. 그런 면에서 한국이 앞으로도 먹고살려면 대학의 역할이 굉장히 큽니다. 교수들도 그저 옛날식으로 대충 해선 안 됩니다. 학교가 괜찮고 교수 자신이 괜찮을진 몰라도 국가적으로 볼 땐 큰 손실이죠.”

교수 경쟁력 확보 외에 또 시급한 문제가 있다면요. “앞으론 지적재산이란 게 굉장히 중요해질 것 같습니다. 한국에선 아직 지적재산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죠. 불과 20년 전만 해도 한국에선 ‘지식은 값이 없다’는 생각이 일반적이었습니다. 당시 제가 무슨 일이 있어 한국을 방문했을 때 모 기업의 초대를 받아 자문을 해준 적이 있어요. 그런데 물어보면 으레 대답해주는 걸로 여기더군요. 점심이나 대접하면 끝나는 줄 알고요. 미국에선 컨설팅에 대한 대가가 어마어마하거든요. 그런데 여전히 한국은 손에 쥐어지지 않는 건 죄다 공짜라고 생각합니다. 지적재산의 중요성은 앞으로도 점점 커질 겁니다.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며) 이 단말기에 사용되는 CDMA 기술이 미국 퀄컴이란 기업 거예요. 어제 누가 그러는데 퀄컴사가 한국 휴대폰 제조업체로부터 받는 라이선싱비만 5조원이랍니다. 한국 기업이 휴대폰 만들어서 얼마 벌었는진 모르지만 퀄컴은 가만히 앉아서 5조원을 번 거죠. 또 있습니다. 한국에서 LNG 선박을 제조할 때 꼭 필요한 게 단열패널(insulation)입니다. 특허료가 배 한 척당 지금 환율로 100억원이에요. 그런데 한국은 원천기술 가진 게 별로 없습니다. 원천기술을 확보하려면 R&D에 오랫동안 투자해야 하는데 그런 것도 없이 하루아침에 뭔가 나오길 바라면 안 되죠. 제가 볼 땐 한국이 앞으로 그런 분야 발전을 위해 더 많은 투자를 해야 합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할까요. “4월 말에 추경예산이 편성됩니다. 여기에 R&D 부문 예산도 3000억원 상정돼 있어요. 그런데 통과가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지금 전세계적으로 경제 위기를 겪고 있지만 미국이나 일본은 오히려 추경예산에 R&D 예산을 더 많이 책정하고 있습니다. 지금 당장은 경제가 어렵지만 언젠가 위기에서 탈출하게 될 때 치고 나갈 수 있는 힘은 R&D뿐이거든요. 그런데 한국은 지금 당장의 위기를 벗어날 생각만 하고 그 이후는 전혀 대비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건 잘못된 생각이죠. 국가경쟁력을 높이려면 눈앞의 성과에 연연해선 안 됩니다. 원천기술 확보에 보다 힘을 써야 합니다.”

최근 모 월간지 인터뷰에서 “KAIST는 과학기술에서 제일 좋은 사람을 만들어내는 것이 목적”이라고 얘기했습니다. 어떤 일을 앞장서서 끌고 가는 사람, 즉 리더를 많이 배출하는 학교가 되겠다는 뜻으로 이해됩니다. 그런데 세상엔 리더만 있을 순 없습니다. 서남표식 철학이 자칫 우월성 교육에 치중한다는 비판을 받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 “KAIST의 개혁은 다른 대학이 따라올 걸 염두에 두고 하는 게 아닙니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대학은 세 가지 혹은 네 가지로 구분해야 합니다. 그에 따라 목표도 달라지죠. KAIST 같은 학교는 연구대학입니다. 학부보다 대학원 과정이 훨씬 크고 연구 수준도 높죠. 연구하지 않는 교수는 버틸 수 없어요. 모든 교수가 세계적 석학이 돼야 합니다. 그런데 연구대학보다 훨씬 더 많이 필요한 게 4년제 일반대학입니다. 일반대학의 목적은 리더를 양성하는 것보다 많은 사람에게 지식을 전파하는 거예요. 세 번째는 의사나 법조 인력을 배출하는 의과대학이나 법과대학 등의 전문대학(원)이죠. 네 번째는 직업숙련공을 키워내는 2년제 직업학교예요. 전 4년제 일반대학 교수에게 연구대학 수준의 논문을 요구하는 건 무리라고 생각합니다. 모르긴 해도 거기선 1주일에 12시간 이상씩 수업을 해야 한다고 들었어요. 그러면서 언제 연구를 합니까. 연구대학에선 충분한 시간과 환경을 제공하면서 그에 상응하는 지식을 요구합니다. 그런 것도 아니면서 덮어놓고 논문 쓰라고 야단하면 안 되죠. 그렇잖아도 최근에 그 이유를 한 대학교수님께 여쭤봤어요. 그 분 말씀이 한국에선 일반대학도 연구대학을 표방해야 학생들이 온다고 해요.”

연구대학의 이미지를 따라가려는 일종의 전략이군요. “네. 그 때문에 연구대학이 아니지만 연구대학인 것처럼 끌고 갈 수밖에 없다고 하더군요. 그게 사실인지 아닌진 잘 모르겠습니다. 그런 의견도 있다는 얘기죠.”

그런데도 대부분의 대학이 KAIST를 따라가려고 합니다. “대학이라고 다 같은 대학이 아닙니다. 목적이 다르니까요. 가령 제가 만약 2년제 전문대를 맡았다면 KAIST와 전혀 다르게 운영했을 겁니다. KAIST처럼 할 필요가 없어요. 전 KAIST의 개혁 방식이 제일 좋은 솔루션이라고 안 봅니다. 학교마다 처한 목적이 다르죠. 그렇지 않습니까.”

한국 대학의 상당수가 직선제를 거쳐 총장을 선발합니다. 그러나 KAIST를 비롯, 몇몇 대학의 경우 이사회가 총장을 임명하기도 하는데요. 일부에선 “서남표 총장이 직선제를 통해 선출됐어도 지금처럼 개혁을 성공시킬 수 있었겠느냐”고 말하기도 합니다. “교수 선거로 총장을 뽑는 대학이 우리나라에만 있는 건 아닙니다. 일본 도쿄대도 오랫동안 총장 직선제를 고수해 왔죠. 다만 미국은 거의 모든 대학이 이사회에서 총장을 임명합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어요. 일부 주립대학의 경우 공모를 하기도 하는데 물망에 오르는 사람들 이름이 신문에 오르내리기 시작하면 정말 좋은 분들은 지원하지 않습니다. 학교 측에서 진짜 유능한 총장을 모셔오려면 조용히 공을 들여야 해요. 총장 자리를 놓고 남 앞에서 선거운동하겠다는 사람 별로 없습니다. 총장 인선 작업이 비밀리에 진행되는 것도 그 때문이고요. 총장뿐 아니라 교수를 뽑을 때도 마찬가집니다. 모든 인사(人事)는 극비리에 해야죠. 서툰 인사는 결코 좋은 사람을 제자리에 앉힐 수 없습니다. 계속해서 잡음만 발생할 뿐이에요.”

모든 대학이 그렇진 않겠지만 직선제로 선출된 총장의 경우 임기 마친 후 교수로 돌아가기 때문에 동료 교수들 눈치 보느라 소신 있는 학교 경영을 못하는 어려움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글쎄요. 남의 눈치 볼 생각 하면 총장을 하지 말아야죠. 그런 것 다 생각하면 어떻게 이 일을 합니까. 전 이제껏 여러 기관에서 직책(job)을 맡았지만 그게 뭐든 새로운 책임을 맡으면 그게 마지막 일이려니 생각하고 열심히 하는 게 제일 좋습니다. 이 일 마치면 다음엔 뭐하나, 그런 생각하면 무슨 일을 합니까. 못하죠. 예전에 미국 정부에 있을 때도 보통 그 자리에 있다가 나가면 대학 총장으로 가는 경우가 많았거든요. 장관한테 잘 보여서 좋은 대학에 총장으로 가야겠다고 생각하는 사람 꽤 있었습니다. 전 그런 눈치 안 봤어요.”

지금 일이 마지막 일이라고 생각하고 최선을 다하다 보면 좋은 기회도 생긴다고 보시는군요. “그런 것도 아닙니다. 저도 어떻게 하다 보니 여기까지 오게 된 거고. 여기 오려고 계획한 적은 없어요. KAIST 총장 되려고 딱히 준비했던 것도 아니고요.”

KAIST 총장이 되고선 교육 공무원들과, 신성장동력 산업기획단장 일을 맡은 후엔 기타 정부 부처 공무원들과 교류할 기회가 많았을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웬일인지 공무원의 경쟁력을 낮춰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직접 부딪치며 일해본 경험은 어땠는지요. “첫째 굉장히 열심히들 하십니다. 잘하려고 애쓰시고요. 함께 일하기 수월했어요. 제가 보기엔 그분(공무원)들이 공연한 오해를 받고 그러는 게 너무 많은 규제 때문이 아닌가 싶어요. 한국은 법이 너무 많아 윗선이 지시한 내용이라고 해도 추후 그게 문제가 되면 실무를 맡은 아랫사람이 책임지는 구조예요. 그러니 명령이 안 통하는 경우가 허다하죠. 윗사람이 아무리 하라고 해도 골치 아플 것 같으면 법에 걸린다 어쩐다 하면서 안 하는 거예요. 감사(audit)제도도 너무 심합니다. 별일도 아닌데 다 감사를 하니까 위축될 수밖에요. 뭘 하든 자신의 판단에 따르기보다 ‘감사에 걸리면 어떡하나’ 그런 생각부터 하니 제아무리 유능한 공무원도 일하기가 어렵습니다. 물론 감사, 필요하죠. 부패를 방지하기 위해 만든 제도니까요. 그런데 요즘 일어나는 일들을 보니 공무원을 감시하기 위한 감사제도가 아무리 튼튼해도 (부패가) 방지되는 건 아니던데요. 그러니까 제가 보기엔 한국에서 공무원이 소신껏 일하려면 ‘잘못해도 괜찮다’며 용납하는 분위기가 돼야 할 것 같아요. 어떻게 사람이 항상 잘하기만 합니까. 일하다 보면 실수도 하는 거고 잘못할 수도 있는 건데 뭐 하나 잘못됐다고 해서 일평생 그것 때문에 진급도 못하고 그렇게 되면 무슨 일을 하겠냐는 거죠.”

공무원 개인의 문제라기보다 사회제도상의 문제란 얘기군요. “사람들은 사회가 기대하는 것과 같이 행동합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자신이 생각했을 때 ‘이렇게 하면 사회에서 용납되겠지’ 하는 방향으로 움직인단 얘깁니다. 그게 기준(standard)이 되는 겁니다. 예를 들어볼까요. 우리 KAIST 교수님들에게 ‘앞으론 논문 수에 따라 실적을 매기겠다’고 발표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똑똑하신 분들이니 당장 논문의 질보다는 숫자 맞추기에 급급할 겁니다. 그렇지만 반대로 ‘논문 수는 안 따지겠지만 질은 엄격하게 심사한다’고 하면 논문 수 늘리기보다 좋은 논문 한 편 쓰기 위해 노력할 거라는 거죠. 학교가 어떤 기준을 제시하느냐에 따라 교수님들의 행동이 달라지는 겁니다. 그래서 기대수준(expectation)이 중요합니다. 지금 한국 공무원 사회는 감사다 뭐다 하면서 세부적인(detail) 것에 너무 치중해 있어요. 그런 환경에선 그 기대만 충족하면 됩니다. 일의 중요도는 관계 없어지는 거죠. 그런 면에서 지금 한국은 규정이 너무 많습니다.”

KAIST의 경우는 어떤가요. “저희도 여전히 규정이 많습니다. 없애야 할 게 많은데 몇몇은 이미 관습이 돼버려 손대기가 굉장히 어려워요. 소소한 규정이 사라지면 어떤 상황에 처했을 때 사람들은 나름대로 판단을 합니다. 그렇지만 규정이 있으면 생각을 멈춥니다. 규정에 따르기만 하면 되니까요. 대신 책임은 사라지죠. 규정 자체가 옳은지 그른지에 대한 고려도 없어요. 그런데 사회가 발전하려면 위험을 감수하는(risk taking) 태도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게 없다면 그 사회는 죽은 사회죠. 모든 일엔 다 단계(step)가 있습니다. 제 생각엔 모든 단계에서 감수해야 할 위험이 있는 게 맞습니다. KAIST에서도 교수님들에게 늘 위험부담(risk)이 큰 연구를 하라고 독려합니다. 리스크가 크면 실패할 확률도 높죠. 전 그것도 괜찮다 이겁니다. 학교든 공무원 사회든 조직구성원은 그들에게 기대하는 만큼 성취(delivery)합니다. 그걸 명심해야 해요.”

미국의 안정적 직장과 지위를 버리고 한국으로 온 걸 후회한 적은 없나요. “(단호하게) 없습니다, 그런 거.”

연봉도 미국에 있을 때보다 3분의 1로 줄었다고 하던데요. “미국에선 대학교수도 이것저것 부수입이 많고 하니까요. (3분의 1이란) 수치가 정확한 것도 아니고. 뭐 그런 것 관계없습니다.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워낙 좋으니까요. 열심히들 하고. 물론 제 옆에 있으면 일은 많죠. 그런데도 교수님들, 직원들 모두 열심히 해주고 있어서 만족합니다.”

이명박 대통령 취임 이후 우리나라 교육정책은 이전 정권과 기본 철학부터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특히 교육문제는 이슈마다 찬반 양론이 팽팽하게 맞서는 등 종종 이념문제로 변질되곤 하는데요. 만약 이런 교육 난맥상을 해결해야 할 위치에 선다면 어떤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겠습니까. “그건 모르죠, 안 당해봤으니.(웃음) 그런데 제가 볼 땐 모든 일이 목표가 분명하면 결정하기가 쉽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목표를 잊고 자꾸 다른 걸 생각하는 게 문제죠. 부산까지 가는 게 목적이면 그것만 생각하고 가면 되는 거예요. 서쪽으로 가면 바람이 세지 않을까, 동쪽으로 가볼까. 이런 식으로 생각하기 시작하면 끝이 없는 거죠. 목표가 뚜렷하다면 똑바로 못 가더라도 방법이 있어요. (지그재그를 그리며) 이렇게 가도 되죠. 갔다가 되돌아오면 또 어떻습니까. 어느 조직이든 마찬가지예요. 여러 가지 사정으로 직선 코스를 택할 수 없는 경우가 있죠. 그럴 땐 차선을 택하면 됩니다. 어차피 가야 할 곳은 하나니까요.”

그럼 지금 우리 교육의 목적지는 어딜까요. “제가 보기엔 간단합니다. 어떻게 하면 한국의 인적자원을 제일 잘 활용할 수 있을까 하는 거죠. 그렇게 본다면 전부 KAIST에 보내는 게 최선이 아닌 건 분명합니다. 한 나라에서 인재를 필요로 하는 부분은 다양하잖아요. 어떤 사람은 미술을 하는 게 맞고 또 어떤 사람은 음악을 하는 게 맞죠. 철학공부가 어울리는 사람도 있고요. 모든 사람이 능력껏 배워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죠.”

KAIST는 지난해 한국과학영재학교를 흡수통합했습니다. 영재교육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까요. “영재(英才)란 말 자체가 부담스럽죠. 누가 어떻게 영재인지 아닌지를 정하느냐 하는 문제부터 그렇습니다. 아인슈타인이 초등학생일 때 누가 그를 영재라고 생각했겠어요. 제 판단이 틀릴지도 모르지만 제가 생각하는 영재교육이란 장래성 있는 사람을 뽑아서 잠재능력을 완전히 발휘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겁니다. 물론 잠재능력이란 건 사람마다 다 다르죠. 한국과학영재학교를 떠맡은 후 알게 된 건데 영재학교에 들어오기 위해 받는 사교육도 엄청나다고 하더군요. 그렇게 들어온 학생이 과연 전부 영재일까요? 내년도 신입생 선발에서 시골 학교 출신 150명을 학교장 추천 전형으로 뽑으려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그 애들의 시험 성적은 사교육으로 무장된 도시 학생들에 훨씬 못 미치겠죠. 그렇다고 해서 그 애들이 영재가 아닐까요? 그건 아니란 얘깁니다. 교육엔 두 가지 단계가 있어요. 똑똑한 사람을 어떻게 뽑을 거냐, 그리고 일단 뽑은 사람을 어떻게 가르칠 거냐. 전 일단 여러 전형을 시험해 보면서 열심히 영재를 찾을 겁니다. 그리고 그렇게 뽑은 친구들을 ‘영재’라고 생각(definition)하고 가르칠 겁니다.”

어떻게 가르칠 계획입니까. “제일 중요한 건 각 개인이 지니고 있는 천성(innate capability)이 잘 발휘될 수 있도록 돕는 거겠죠. 그러려면 꽉 짜인 커리큘럼보다는 느슨한 교육이 필요할지도 모릅니다. 다만 젊은 친구들은 아무리 머리가 좋아도 뭐든 시켜보지 않으면 해이해지기 쉬워요. 그래서 이런 것도 시켜보고 저렇게도 가르쳐보고 하는 겁니다. 영재교육에서 제일 중요한 건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사람으로 만드는 거예요. 혼자 힘으로 문제를 파악할 수 있고 풀이과정을 떠올릴 수 있도록 하는 것, 그게 핵심입니다. 그러려면 기본 지식은 있어야겠죠. 2 더하기 2가 4란 것도 모르는 사람이 더 깊은 사고를 하긴 어려우니까요. 사람 뇌엔 빈 터가 많습니다. 무수히 많은 뉴런에 가능한 많은 데이터베이스를 심어주고 그걸 효과적으로 조직할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야 합니다.”

그런 맥락에서 현재 KAIST 구성원들의 영재성은 어떻게 평가하나요. “예전 한국 교육은 논리적 사고보다 암기능력으로 대표되는 기계적 사고에 치중해 비난을 받았죠. KAIST에서 교수를 채용할 때 각 학과에서 선발돼 오면 마지막 면접은 꼭 제가 직접 봅니다. 면접할 때마다 느끼는 게 있어요. 어떤 사람은 이력서만 보면 대단하죠. 세계적인 일류대학 출신에 성적도 우수해요. 그런데 막상 마주앉아 얘기해보면 도대체 융통성이 없어요. 물론 제 판단이 틀렸을 수도 있죠. 하지만 박사가 별건가요. 2~3년 자기 선생이 하란 대로만 열심히 하면 박사 할 수 있어요. 스스로, 논리적으로 생각하는 능력은 박사학위 받는다고 저절로 생기는 게 아니거든요. KAIST 교수는 일단 임용된 후엔 아무도 시키는 사람이 없어요. 모든 걸 알아서 해야 하죠. 그런데 교수란 사람이 뭐가 중요한지도 모른 채 남들 흉내만 낸다면 어떻게 세계적 학자가 되겠습니까. 어림없죠. 정규 교육(formal education)이 그런 능력을 끄집어내긴 쉽지 않지만 그걸 해내느냐, 그렇지 않느냐가 좋은 학교와 나쁜 학교를 가른다고 생각해요.”

그런 실험들을 한국과학영재학교에서 해보려고 하시는 거군요. “해봐야죠. 아직은 (성공을) 장담 못하지만. 그래서 올 여름엔 한국과학영재학교 학생들을 전원 KAIST 교수님들 방에 데려다 놓을 겁니다. 실험기기를 닦든 마루청소를 하든 해보면서 얻는 게 있겠죠. 가끔 대학원생들 얘기도 들어볼 거고요. 사람은 눈으로 배우는 게 정말 큽니다. 전 그게 참 중요하다는 걸 경험으로 알아요. 제가 미국에서 대학 다닐 때 고학생이었어요. 학업 외에 일주일에 25시간씩 일을 해서 먹고살았죠. 어떨 땐 직업이 두 개, 세 개인 적도 있었어요. 실험실 정리, 도서관 청소를 비롯해 안 해본 일이 없었죠. 그런데 거기서 굉장히 많은 걸 배웠어요. 지금도 머릿속에 그대로 남아있죠. 반면 교실에서 배운 건 기억나는 게 별로 없어요. 그래서 전 산지식의 힘을 믿습니다. 영재학교 학생들에게도 그걸 알려주고 싶어요.”

서남표 총장을 인터뷰한다고 했더니 누군가 그러더군요. “그런 사람이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이 돼야 하는데….” 실제로 그런 제안을 받는다면 수락하겠습니까. “난 그거 없습니다. 도대체 없습니다.”

하기 싫으신 건가요. “제가 (미국) 정부에 있어봐서 압니다. 거기서도 공과대학 교육을 맡아 꾸려봤죠. 정부란 게 어떤 조직인지 잘 알아요.”

언론 보도를 봐도 그렇고 오늘 인터뷰 내용도 그렇고 ‘전형적인 워커홀릭’이란 인상을 받았습니다. “글쎄요. 전 뭐 그렇게 생각 안 합니다. 제가 재미있으니까 하는 거죠. 누가 시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언제 쉬나요. “오늘 같은 토요일엔 원래 집에 있는데 오늘은 일이 많네요.”

일요일은 어떻습니까. “내일은 비행기 타고 미국으로 출장갑니다. 디트로이트에서 강의 세 개, 보스턴에서 강의 하나가 잡혀 있어요. 2주 후 금요일에 오기로 돼 있는데 그 전에 와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국회에 들어갈 일이 있어요.”

일 안 할 땐 어떻게 시간을 보냅니까. “일 안 할 땐 일하죠.(웃음) 다른 일을 하죠. 일이란 건 어떻게 정의하느냐의 문제예요. 뭐가 일입니까. 또 뭐가 일이 아닙니까. 제겐 그 모든 게 일이기도 하고 일이 아니기도 합니다.”

그래도 유난히 힘든 일이 있겠지요. “모르는 사람 찾아가 기부금 달라고 하는 건 확실히 일이죠.(웃음) 그런데 참 이상합니다. 처음엔 그게 일인데 일단 돈을 받고 나면 기부자와 전 친구가 돼요. 그때부턴 일이 아니죠. KAIST에 기부하시는 분들 대부분이 저와 친구가 됩니다. 처음엔 서먹하지만 나중엔 서로 편해지는 거예요. 기부금 모금, 어렵죠. 다 큰 사람이 돈 달라는 게 쉬울 리 있습니까. 부끄럽고 마음도 편치 않죠. 그렇지만 큰 목적이 있으니까, 학교란 걸 잘해보려는 거니까 할 수 있는 거예요.”

기부가 인연이 돼 사귄 친구도 많겠습니다. “그럼요. 기부해주신 분들은 모두 제 친구죠. 전 돈 받고 나면 그분과의 관계가 그때부터 시작(beginning)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마찬가지죠. 전 돈을 받았으니 잘 써야 하고 그러려면 돈 주신 분과 의논해야 하니 서로 입장이 같은 겁니다. 어떤 분은 기부를 계기로 친구가 됐지만 어떤 분은 친구이기 때문에 기부를 하기도 했어요. 얼마 필요하냐며 먼저 얘길 꺼내는 분도 있었죠. 최근에도 하와이에 계시는 사업가 도널드 김(한국명 김창원) 회장께서 100만달러를 선뜻 기부해 주셨습니다. (578억원을 KAIST에 기부한) 류근철 박사도 이번에 처음 알았습니다. 저보다 연세는 많으시지만 역시 친구가 됐죠. 이렇게 저렇게 만난 좋은 분들이 모두 값을 매길 수 없는 제 재산입니다.”

서남표 총장은?

1936년 경북 경주 출생. 1959년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기계공학과를 졸업하고 1964년 미국 카네기멜론대에서 기계공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70년 MIT 기계공학과 부교수로 부임해 MIT 생산기술연구소장, 기계공학과 학과장, 석좌교수를 거치며 학자이자 리더로서 탁월한 성과를 거뒀다. 1984년부터 4년간 미국국립과학재단(NSF) 공학부문 총괄 부총재(대통령 추천 및 상원 인준으로 임명)로 미국 정부의 공학 담당 연구개발의 총책임을 맡아 당시 일본에 뒤지던 미국의 제조업 경쟁력을 크게 향상시켰다는 평가를 받았다. 공리적 설계이론(소비자로부터 받은 요구를 분석, 해결하는 과정을 연구하는 분야)의 창시자로 마찰공학, 제조과학기술, 설계과학 분야에서 뛰어난 연구업적을 달성했다. 현재까지 발표한 논문은 300편 이상이며 보유 특허는 50여개에 달한다. 미국 인명사전과 세계 5000명의 지도급 명단에도 올라 있다.

다수의 국제적 기업과 미국 정부기관, UN, 세계은행 등의 기술자문을 맡았으며 스웨덴 왕립공학아카데미(IVA) 해외회원, 미국기계학회 생산성위원장, 미국기계공학회 평생회원, 한국과학기술한림원 평생회원, 인터내셔널 저널 로보틱스 & CIM 편집장 등을 역임했다. NSF 올해의 국가공학자상(1987), 호암상 공학상(1997), 영국 공학설계원 힐스밀레니엄상(2001), 미국학제교육협회 아카데미 명예금상(2006), 플라스틱공학자회 종신업적상(2007) 등을 수상했다. 1980년대 초반 한국 경제개발 5개년 계획안 작성에 자문을 맡은 것을 시작으로 한국 정부기관에 대한 각종 자문과 산업체 및 한국생산기술연구원 고문을 역임하는 등 한국의 산·학·연 발전에도 큰 공헌을 해왔다. 2006년 7월 KAIST 총장에 취임했고 현재 대통령 직속 신성장동력기획단장과 국가과학기술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입력 : 2009.04.28 17:06 / 수정 : 2009.05.02 15:09(조선닷컴)

최혜원 기자 happyend@chosun.com